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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다,2

작품 일련번호 PE3X-YBZK-RY3G-1GSX
출품 에이전시 가이덤재단
출품형식 표시 제시출품(단품)
출품자(작가) 최기정(choi7755) / choi ki jung
작품분류 및 규격 평면작품
작품명 꿈꾸다,2
작품재료 및 형식 acrylic pan on scratch
제작년도 2020 년
작품가격 1,000,000 원
인증서
인증기관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
작품평론 인간의 보편적 조건으로서의 트라우마

이선영(미술평론가)

최기정의 작품에서 아크릴판 표면을 수없이 긁어서 만든 깃털 이미지에는 몸통이 없다. 관용적 표현에서 ‘몸통 없는 깃털’은 ‘꼬리 자르기’라는 표현처럼 실체 없는 진실에 대한 비유로 쓰이곤 한다. 그러나 예술이라는 허구의 차원에서 몸통 없는 깃털은 홀가분한 상태에서 유희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단발성이기 보다는 시리즈의 성격이 강한 최기정의 작품은 몇 가지 구성요소를 선택하여 조합하는 유희적 속성이 두드러진다. 작가가 선택한 깃털과 새장, 곤충과 물고기 같은 요소는 물속 또는 들판의 풍경부터 수직 수평의 추상까지 아우르는 계열로 확장된다. 캔버스나 한지에 그려진 바탕화면과 상호작용하는 아크릴판은 보호와 투과라는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아크릴판에 침으로 새겨진 깃털은 한 개, 또는 두 개, 또는 여럿이 나와도 셀 수 있을 정도의 적은 숫자다. 가뜩이나 가벼운 존재의 무게를 더 비워낸다.
전통사회에서 사용되던 깃털 펜 등을 제외한다면, 실생활에서 활용되는 깃털은 대개 덩어리다. 깃털을 충전재로 사용하는 물건들은 보온력이나 복원력 등이 높아 살아있는 소재로 취급된다. 작가가 오랫동안 소재로 삼은 그것을 발견한 것도 푹신한 소파에서 삐져나온 깃털이었다. 다소간 미안한 마음으로 집어 든 깃털은 예술로 승화되었다. 원래 깃털을 날기 위한 것이지만, 작가의 눈에 처음 들어온 깃털은 죽은 채로 때로는 산 채로 뽑혔을 것이며, 타자의 자유와 희망을 내 것으로 삼는 계층구조의 진실을 떠오르게 한다. 이 엄혹한 삶의 진실로부터 빠져나온 깃털은 마지막 잎새를 보고 희망을 얻은 동화 속 인물처럼 삶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이에게 영감을 준다. 깃털은 몸통으로부터도 물건으로부터도 벗어나 자체의 존재감을 획득한다. 깃털은 생존이나 사용을 위한 유용성이 아니라 심미적 존재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단편이 전체가 될 정도의 존재감을 갖추기 위해 어떤 종의 깃털인지, 속털과 겉털의 상태를 구별할 수 있을 만큼의 섬세한 묘사가 이루어졌다.
최기정의 깃털은 그려진다기보다는 새겨지는, 즉 좀 더 많은 에너지와 기술이 요구되는 과정을 통과한다. 출품작은 100호 크기의 작품들이 대부분이지만, 작품이 크다고 해서 밀도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작가는 조류학자를 찾아가 조언을 얻을 만큼 여러 종의 깃털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도 했는데, 주요 이미지는 백공작의 깃털로 선택됐다. 백공작은 귀함의 상징이며 화려하면서도 우아하다. 작품마다 어울리는 깃털을 고르며, 상상한 깃털도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장지에 먹을 사용한 모노톤의 작품 속 공작의 깃털은 화려함은 빠지고 빛에 가까운 순수함만 남겨 두었다. 공작새의 깃털은 수려하지만 생존에는 쓸모없는, 그러나 유전자를 남기기에는 우월한 유혹적 자태를 가진다. 공작의 깃털은 생존해야 하는 기간보다는 짧은 순간의 유혹에 필요한 허구적 속성이 강하다. 그러나 그 또한 유전자를 남긴다는 종(種)의 프로그램에 충실한 실재이다. 허구와 실재에 걸치는 백공작의 깃털은 문화적 유전자를 남기는 작업인 예술과의 유사성을 생각하게 한다.
더 나아가 그 깃털은 삶과 예술의 관계를 말한다. 예술로서의 삶을 꿈꾸었던 철학자 니이체는 무거운 삶과 가벼운 예술을 대조하면서, 허구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킨 바 있다. 니이체에게 예술을 무거운 삶에 대한 대안이었던 것이다. 삶의 무거움은 모든 살아있는 존재에게 운명처럼 각인된 생존의 문제이다. 누군가 자유와 초월을 외친다면, 그것은 바로 삶을 잡아끄는 가장 강력한 중력인 생존의 문제이다. 그것은 진화의 역사에 처절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다른 동물에 비해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나는 인간에게 생존의 조건은 긴 유년기 시절의 보호이다. 2살 때 어머니를 잃은 작가에게 생존게임은 인생 초반기부터 만만치 않게 다가왔다. 최기정은 뒤늦게나마 예술을 통해 그 트라우마를 치유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생사의 굴곡은 작품에 직접 반영되는 것일까. 정신분석학자들은 욕망의 끝없음을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잃어버렸기에 되찾아야할 최초의 충만함이 있었는지도 의문에 부친다.
정신분석학자 엘리 레그랜드 설리반은 [페미니즘과 정신분석 사전]의 한 항목에서, 어린아이가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상실하는 것으로 여겨진 어머니의 목소리나 얼굴 등은 ‘소유된 바 없으며 그리고 항상 이미 완전히 상실된 상태라는 사실로부터 구성된다’는 라깡의 말을 인용한다. 물론 상실은 ‘언어, 존재, 표상화, 욕망 그리고 육체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설리반) 있다. 현대 정신분석학의 가설은 자신을 평생 괴롭혔다고 믿는 심각한 트라우마가 과연 실재하는 것이었나를 묻게 한다. 생물학적 요구를 넘어서 사회적 욕망에 의해 추동되는 인간은 애초에 없었던 것을 끝없이 추구하고 그리워할 수 있다. 사회, 특히 가부장적 사회가 찬미하는 모성에 대한 관념 또한 의심스러운 이데아이다. 모성에 대한 결핍과 부재는 뒤늦게 어머니가 되었으며 학업과 작업을 병행하는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작가에게도 초월할 수 없는 문제이다.
트라우마는 한 개인의 이런저런 인생 역정에서 발생 되는 사건이기보다는 태반 속의 아이가 누리는 완전한 조건으로부터의 축출, 즉 탄생의 순간부터 자리 잡는다. 작가를 괴롭혀왔던 트라우마로부터 비롯된 불안과 공포는 개별적이기보다는 인간의 보편적 조건이라는 것이다. 탄생이라는 원초적 사건의 희미한 흔적들이 있을 따름이다. 크리스테바는 [사랑의 정신분석]에서 트라우마를 균형을 이루던 생물학적 충동의 단절이며, 불안과 공포도 그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 ‘모성으로 인해 충동이 온전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던 상태를 갑작스레 단절시키는 것’(크리스테바)이 바로 불안과 공포이다. 모체로부터 분리되는 출생의 기억은 무의식적인 것이다. 그러한 트라우마는 환상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예술작품에 흔적을 남긴다. 트라우마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해석은 최기정의 작품처럼 최초의 사건이 드러나지 않을 때 더욱 호소력이 있다. 그녀의 작품에서 남겨진 깃털은 그 전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사실적으로 그려진 깃털은 달을 가리키는 손처럼 상상을 향해 배열된다.
트라우마가 실재하는 것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의지이다. 떨어진 깃털로부터 시작된 상상은 여태까지의 인생과 앞으로의 인생 모두에 대한 심적 투사가 된다. 정신적 고통을 받는 이들이 궁극적으로는 사랑의 결핍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크리스테바는 예술가를 ‘불안과 공포를 새로운 은유들로 전환시키는 놀이에 몰두’(크리스테바)하는 존재라고 보는데, 그것은 환유법을 구사하는 최기정의 작품을 잘 설명한다. 몸통 없는 깃털에서 직관적으로 인지되는 부재는 어머니, 또는 어머니로 상징되는 완전한 만족감으로 상상된다. 최기정의 작품에는 부재라는 사실이 아니라 부재의 흔적, 그로부터 비롯되는 환상이 있다. 깃털이라는 분리된 대상은 그 이미지를 아크릴 표면에 새긴 후 다른 이미지와 중첩하는 이중의 분리과정을 거친다. 거듭되는 분리는 환상성을 고조시킨다. 로즈메리 잭슨은 [환상성]에서 환상적인 것의 핵심을 기표와 기의 간의 분리라고 본다. 그에 의하면 환상은 현존을 부재로 대체시킴으로서 이런 비(非)의미화의 영역, 즉 죽음을 끌어들인다. 몸통 없는 깃털들은 죽음을 연상시키지만, 작품이나 예술에의 의지 속에는 그 죽음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깃털은 자유로운 기표가 되어 여러 상황 속에 얹힌다.
아크릴판 위에 깃털을 새기는 것은 기표를 어디선가 떨어져 나온 불완전한 것이기보다는 그자체로 자율적인 단편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독으로는 서있지 않는다. 정확히는 떠 있다. 욕망 또한 무엇을 겨냥한다. 그러나 실체가 없는 것이기에 부단히 표류한다. 작가에게 예술 또한 욕망 충족의 여정, 즉 불가능한 여정이다. 로즈매리 잭슨은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욕망이라는 강력한 신화가 모더니즘의 핵심적 특징 중 하나라고 본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에서 모노 톤으로 이루어진 바탕과 투명한 아크릴판의 만남은 부재감을 강조한다. 그렇게 텅 비워진 지점들은 블랙홀처럼 주변의 것들을 끌어들이는 보이지 않는 중심이 된다. 최기정의 작품 속 곤충이나 물고기는 원래 있었다기보다는 모여드는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렇기에 그것들은 다시 흩어질 것이다. 식물의 잎새처럼 변신한 깃털들처럼 말이다. 어두운 배경에 빛처럼 드러나는 하얀 깃털은 같이 등장하곤 하는 물고기들이나 나비들처럼 무한한 시공간을 무대 삼아 유영한다.
깃털과 대조되는 것은 새장이다. 새의 일부인 깃털이 환유의 역할을 한다면, 새장 안팎의 깃털은 자유와 구속에 관련된다. 몸통을 갖춘 온전한 새라면 나올 수 없는 촘촘한 철장들은 예쁘지만 무시무시하다. 새는 깃털이 돼서야, 또는 깃털로 변신해서 새장을 빠져나온다. 앞만 바라보고 쉼 없이 달려오니 어느덧 50세를 바라보는 작가는 이제야 조금 새장 밖에 나온 느낌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경력을 뒤로하고 늦게 미대에 입학했지만 작업하는 삶이 궤도에 오르면서 생겨난 자신감의 발로일 것이다. 새장은 대개 여러 개가 겹쳐 있다. 삶의 질곡에 관한 은유이기도 한 새장은 여러 겹 걸쳐 있는 것이다. 그 안에 있는 깃털은 어느 새장에 있는지 헷갈린다. 여러 통증이 있다면 가장 큰 통증이 고통의 원인으로 지목될 것이다. 그것이 사라지면 가려져 있던 또 다른 통증이 부각된다. 여기에서는 억압과 자유가 단순하게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억압으로 이어지는 여정으로서의 삶이다.
길쭉한 형태의 새장들은 마치 왕복운동을 하는 시계추처럼 보이기도 한다. 같은 형태가 겹쳐진 것이 운동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기정의 작품에서 깃털은 강하다. 솜털같은 깃털이 나비처럼 떠 있는 가운데 무거운 새장을 지탱하는 깃털이 있다. 깃털은 식물 이미지로 변신하기도 한다. 육상식물일 때는 나비들이, 수중식물일 때는 물고기들이 포진한다. 수륙의 풍경이 함께 하는 것도 있다. 이 시리즈들은 자체로도 운동감이 있지만, 작품들 간에도 운동감이 있다. 한 화면의 그리고 여러 화면들 간의 깃털, 나비, 물고기들의 동작들은 애니매이션같은 효과를 준다. 깃털이 이파리 모양과도 겹치는 것은 프랙털 이론이 말하는 것처럼, 물질과 에너지 분배 과정의 유사성에서 기인한 상사 관계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깃털은 새의 부분이지만 어떤 식물의 전체처럼도 나타난다. 깃털은 물 또는 공기로 가정되는 매개물을 따라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면서 그 사이로 노니는 생물체들을 돋보이게 한다.
공작새의 깃털이 그렇듯이 유혹자처럼 다른 존재들이 모이게 한다. 깃털 자체가 나비나 물고기 같기도 하다. 나비 이미지는 그 팔랑거리는 가벼움으로, 물고기 이미지는 유선형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각각은 존재의 연쇄를 이루면서 작품으로 한정된 소우주들을 채운다. 가볍디 가벼운 깃털은 삶의 무거움에 직면한 작가의 역설적 선택이다. 깃털은 우선 추락의 이미지로 다가오지만, 반대로 추락의 상황을 극복하고 비상하는 이미지일 수 있다. 추락은 그 반대의 운동, 즉 도약을 도모하게 한다. 분리된 깃털은 영지주의(Gnosticism)의 신화처럼 원래 자기가 있던 곳으로의 복귀를 암시한다. 작가에게 이러한 여정은 작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백색을 넘어서 빛을 발하는 깃털들은 자신이 비롯된 곳으로 가려 한 천사 루시퍼(Lucifer)가 '빛을 옮기는 자'라는 라틴어와 관련됨을 일깨운다. 어디선가 떨어져 나온 하나의 깃털은 자신을 상징하는데 그것은 어머니의 부재라는 상황을 반향 한다.
떨어져 나온 깃털은 아름다우면서도 처절하다. 아크릴 위에다 침으로 수백번 스크래치 해서 만든 순수함의 결정체인 하얀 날개는 작가에게 희열을 안겨주며, 아팠던 상처가 다 치유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가는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날개가 펼쳐진 듯, 날아갈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작품은 고통스러운 상처가 아름다운 무늬가 되는 변신의 과정이다. 하얀 날개는 바탕을 이루는 한지의 따스함과 먹의 단아함과 어우러진다. 30대 후반에 미대에 진학한 작가의 인생 여로 중에 만난 깃털 이미지는 무거운 삶을 가볍게 해야만 하는 과제를 품고 있다. 그리기가 아니라 새기기라는 선택 또한 역설적 소재와 어울리는 기법이다. 깃털 이미지가 새겨지는 투명 아크릴판은 닫으면서도 열어 제친다. 속을 훤히 보여주지만 방어막의 역할도 한다. 상처처럼 새겨진 것은 고통의 이면인 열락이다. 상처를 인식하고 반복과 차이 속에서 꾸준히 펼쳐나갈 때 그것은 치유와 연결된다. 공적 영역에서의 전시행위란 자신의 치유과정을 소통하는 셈이다.
작가론 과거 남겨진 상처의 흔적을 드러내고 싶은 정신적 결핍에서 시작된다.
무의식 속에 잠겨 있는 마음의 상처나 콤플렉스 감정을 밖으로 발산시켜 치유하려는 일종의 정화법으로 스크레치라는 행위로 나타난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마음속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나 상처를 스크레치라는 행위를 통해 외부로 드러냄으로써 강박 관념을 없애고 정신의 안정을 찾는 일이다.
차갑고 투명한 아크릴은 상처내기 쉬운 재료로써 이는 마음의 상처를 대변해주는 작업이며, 스크레치의 반복적 행위는 타자와 소통하며 공감을 얻는 과정에서 마음의 위안을 주고 받는 내적 상처와 외적 상처의 치유를 불러오는 과정이다. 스크레치 과정에서 수십만 번의 노동집약적 반복행위를 통해 고행(苦行) 과정에서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이 바로 ‘상처를 예술로써 승화시키는 행위’인 것이다.
작가약력 최기정 CHOI, Ki-Jung 崔 起 貞 (여)

한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박사 졸업
한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졸업
한남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개인전
2021 갤러리 고트빈/ 대전
2020 화니갤러리/대전
2019 갤러리 이안/대전
2017 갤러리 고트빈/대전
2016 갤러리 담/서울
2015 모리스개러리/대전
2014 가나아트스페이스/서울
2012 이안갤러리/대전

부스개인전
2021 부스개인전 대전아트쇼/골든하이켄벤션센터/대전
2015 부스개인전 대전아트쇼/무역전시관/대전
2013 부스개인전 대전아트쇼/무역전시관/대전

2인전
2014 2인초대전/T갤러리/대전

단체 기획전 60이상 다수

현재: 한남대학교 겸임교수,
한국미술협회회원, 대전미술협회회원,
여성가미술가협회회원, 대전미술대전초대작가

사회경력: 젠(zen)갤러리 대표
교육경력: 대학교 강사 및 겸임교수
수상: 대전미술신인상, 우수작품상, 대전광역시미술대전 특선(4),
청년작가미술대상전 입선, 아트뉴스입선,

주소: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동 주은오피스텔 1210호
E-mail: choi-7755@hanmail.net
Tel: 010 4630 4338
비고